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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산1차회의자료
admin - 2003.10.21
조회 2431

東鶴山遺蹟은 1998년 한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화성 지방산업단지내 개발예정지역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을 채집함으로써 확인된 유적으로, 2000년 3월과 11월 총 19,000여평에 대한 2차에 걸친 시굴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유구가 광범위한 범위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굴조사에서는 동학산 정상부의 능선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환호 등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곡간부에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건물지 유구가 확인되어 전면적인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현재 진행중인 발굴조사는 2000년 12월 27일 개최된 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결과를 토대로 (주)삼성전자측과 협의하여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 유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한 바 있는 2개 지구(e·f지구)를 제외한 3개 지구(a·b·d지구) 24,760㎡에 대해 우선 조사하기로 하고, 공사지역 외의 존치지구(c지구)에 대한 조사 및 보존 등의 문제는 a·b·d지구의 조사결과에 따라 다시 결정하기로 하였다.

2003년 3월 3일 문화재청의 허가(제2003-084호)를 받아 2003년 3월 19일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32기, 3중 환호, 수혈유구 9기, 도랑유구, 중세 건물지 5기, 중근세 민묘 2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유구의 중복관계 등에 의해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유구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표 1> 조사지역 유구현황

유구조사지역

청동기시대 주 거 지

백제시대 주 거 지

환 호

수혈유구

도랑유구

건물지

민 묘

a 지구

6

1


5


5

2

19

b·d지구

26


3

4

3



36

조사개요는 다음과 같다.

○ 조 사 명 : 화성 지방산업단지내 동학산유적 발굴조사

○ 조사지역 :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석우리, 반월리 일원 동학산

○ 조사면적 : 24,760㎡(약 7,500평)

○ 조사기관 :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 조사기간 : 2003. 3. 19 ∼ 2003. 10. 17(현재)

○ 조사단 구성

조 사 단 장 : 장 경 호(기전문화재연구원장)

지 도 위 원 : 김 동 현(문화재위원회 문화재위원) 조 유 전(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 위원) 최 몽 룡(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이 건 무(국립중앙박물관장) 최 병 현(숭실대학교 박물관장) 이 남 규(한신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조 사 위 원 : 박 순 발(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권 오 영(한신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책임조사원 :김 무 중(기전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

조 사 원 :김 성 수(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임 재 옥(기전문화재연구원 관리팀장)

김 영 화(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진 수 정(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이 상 걸(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

조사보조원 :이 석 재(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이 경 원(기전문화재연구원 위촉연구원)

채 정 민(기전문화재연구원 사원)

오 승 렬(인하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민 소 리(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재 협동과정)

ⅱ. 유적의 위치 및 환경

조사지역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석우리 산 154-2번지 일원의 동학산으로 북으로는 화성시 태안읍 반월리, 서로는 기산리, 병점리, 남으로는 능리, 동으로는 영천리와 인접하여 있다. 유적의 동쪽에는 오산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고 서쪽에는 황구지천이 4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동탄면 일대의 지형은 전반적으로 해발100m 전후의 낮은 구릉들과 그 사이의 곡간부로 이루어져 있으나 동학산은 인근에는 비교적 낮은 구릉과 하천 등만 있어 주변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조망이 좋은 편이다. 하천과 산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이러한 자연조건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을 제공하였는데, 인근에 위치한 ‘금암동 지석묘군’ 및 ‘석우리 먹실유적’ 등 다양한 유적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할 수 있다.<도면 1, 사진 1>

ⅲ. 조사 방법

동학산유적은 구릉성 산지의 정상부 및 사면에 형성된 유적으로 정상부 일부와 a지구 곡간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10∼30cm 두께의 토양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정상부의 토양층이 두터운 곳은 그리드발굴법으로, 사면은 전면제토를 원칙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지역은 당초 한신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시굴트렌치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굴트렌치에서 유구가 확인된 곳은 제토과정에서 유구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시굴트렌치의 방향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별도의 그리드를 설치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ⅳ. 조사 내용

1. 유구

가. 주거지

백제시대 주거지 1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거지가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a지구에서 6기, b·d지구에서 26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주거지의 대부분은 구릉 정상부나 그 바로 아래의 사면에 위치한다. 주거지의 규모는 4∼13m 정도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 많으나 세장방형도 다수를 차지한다. 아직 내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거지의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토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시기에 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

a지구의 백제시대 주거지는 침식으로 인해 주거지 단면이 노출된 상태로 상부에 조선시대 유물이 분포하고 있어 윤곽선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라 구체적인 규모나 성격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나. 환호 및 구

환호는 기존 시굴조사에서 현재 존치지구인 c지구에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조사결과 b·d 지구에서도 3중 환호가 확인되었다. b·d지구의 환호는 중간 중간 침식으로 끊어지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타원형의 형태를 띠고 있고 장축의 길이는 80m 정도이다. 환호는 능선부에 축조된 세장방형 주거지를 파괴하고 지나가는데 환호 내부에는 6기의 주거지가 존재하나 환호와의 관련성 여부는 불분명하다. 3중으로 된 각 환호는 모두 출입구 존재하는데, 출입구 근처에 넓게 분포하는 흑색토에서 동착용범이 점토대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용범은 나무 이식과정에서 굴삭기로 되 메우기 해 놓은 흙 속에서 출토되었는데 출토지점이 환호와 주거지가 중복되는 지점으로 나머지 1개체가 유구 내부에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용범 출토지 주변은 흑색 부식토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고 점토대토기와 석렬 등의 존재로 보아 현재 지표면에 드러나 있는 부분이 유구의 바닥부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b·d지구의 환호 가운데 3중으로 된 부분은 현재 도로를 포함하는 e지구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트렌치 단면에서 보이는데, 어느 부분까지 3중을 유지하는지는 좀더 조사가 진행되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b지구 북단에서 확인된 환호는 기존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c지구의 환호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b·d지구의 환호보다는 규모가 훨씬 큰 것으로 판단되며, 내부 출토유물로 보아 b·d지구의 환호와 시기적으로 다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b지구에서 확인되는 구는 비록 폭이 매우 좁기는 하지만 등고선과 평행한다는 점에서 자연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그 내부에서도 점토대토기가 출토되어 이와 관련된 유구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 수혈유구

a지구에서 5기, b·d지구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a지구의 것은 1기는 저장공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판단되나 나머지는 아직 성격을 알 수 없다. b·d 지구의 수혈유구는 내부에서 점토대토기가 대부분 출토되고 있고 일부는 바닥면에 소토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있다. 수혈의 규모는 모두 3m 이내이다.

라. 건물지

건물지는 a 지구의 곡간부 사면에 주로 분포한다. 규모는 20m 정도의 범위를 가지는 중형 건물지 1개소가 있고 나머지는 3∼4m의 소형 건물지이다. 아직 내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건물지의 구체적인 성격은 알 수 없는 상태이며, 자기 및 기와 등의 유물로 볼 때 고려 중후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장시간 이용되어었던 건물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마. 분묘

a지구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1기는 도기매병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판단되며, 1기는 시대미상이다.

2. 유물

이번 조사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건물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기와류 및 자기류가 있고, 조사지역 전체에서 청동기시대 관련 유물이 수습되었다. 유구 내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 지표수습 및 표토 제거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 유구와 직접 연관시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없다. 구릉 정상부에서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이 수습되었는데 b지구에서 간헐적으로 수습되는 상태이다. 석기류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대부분의 석기가 수습되었으며, 환호와 관련하여서는 동착용범 및 삼각형석촉, 점토대토기, 흑도장경호, 고배 등이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동착용범은 우리나라에서 출토 예가 드문 것으로 향후 조사 진행에 따라 관련 공방 등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토기 가운데 점토대토기 바닥을 하고 있으면서 내면 바닥에 돌출부가 있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기형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출토 예가 없는 것으로 광주 신창동 출토 목기 가운데 4절판과 그 형태가 닮은 면이 있다.

ⅴ. 조사 성과

1. 동학산유적은 시굴조사에서도 예상되었듯이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시시에 걸쳐 사람들이 점유한 대규모 복합유적임이 밝혀졌다.

2. b·d지구에서 확인된 환호 유구는 중부지방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것으로 c지구의 환호와 더불어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3. b지구에서 출토된 용범은 우리나라에서 출토 예가 희박한 유물로 청동기시대 금속기 생산과 관련하여 중요한 고고학 자료를 제공하였다.

ⅵ. 토의사항

1. 유적의 처리방안 검토

2. 향후 조사방향에 대한 자문

3. 존치지구인 c지구 조치 관계

4. 기타

사진 1. 동학산유적 전경(동에서)

사진 2. b지구 전경

사진3. b지구 유구배치도

사진4. b지구 환호주변 춛토 동착용범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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