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류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지봉유설, 신화를 넘어 세계를 기록하다
admin - 2019.04.09
조회 940
지봉유설, 신화를 넘어 세계를 기록하다
▶ 실학박물관, 2019년 상반기 특별전 개최 <지봉유설, 신화를 넘어 세계를 기록하다>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관장 박희주)은 ‘지봉유설, 신화를 넘어 세계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개막은 오는 4월 15일 월요일이며 개막식 부대행사는 당일 오후 3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실학박물관은 실학의 선구적인 저술로 평가받는 『지봉유설』을 국내 최초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했다.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은 조선시대 최초의 문화백과전서로 평가받는 기념비적 서술이다. 3,000여개가 넘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지봉유설』에서 그간 가장 주목받아 왔던 ‘제국부(諸國部)’를 중심으로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이수광은『지봉유설』 제국부에서 조선시대 최초로 세계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소개하였다.

실학박물관은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조선시대 이수광이 바라보고 생각했던 세계의 모습은 무엇일까?”, “세상 바로보기를 주장한 이수광의 주장에 대해 당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등 이외의 여러 가지 질문들을 『지봉유설』 소재에서 전시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지봉유설』을 편찬한 이수광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그리고 중원대륙에서 명·청의 교체라는 격동의 시대를 경험한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이수광은 세 차례 사신으로 북경을 왕래하며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키웠고, 국가의 재건을 위한 개혁을 고민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수광은 그 이전의 지식인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성리학적 도덕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개방과 실용의 자세로 세계와 소통한 인물이었다.

이수광이 경험한 세계와 실증에 입각한 세계 정보는 조선이 지금껏 얻지 못했던 생동감 있는 지식이었다.『지봉유설』 「제국부」에 기록되어 있는 50개국이 넘는 여러 나라에 대한 기록은 조선이 세계에 눈뜨는 계기를 제공했다. 비록 조선후기 보수적인 지적 풍토에서 이수광의 선구적인 인식은 곧바로 수용될 수는 없었지만, 그의 학문 정신은 실학사상의 토대가 되는 백과전서류 편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수광의 생애부터 그의 대표저술인『지봉유설』을 중심으로 그가 가졌던 세계인식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는 지봉 이수광을 소개하며 2부에서는 중국에서 만났던 외국 인물들과 그가 탐독했던 책들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1673년 김수홍이 그린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總覽圖)」를 중심으로 이수광과 다른 유교적 세계관을 소개한다. 4부에서는 이수광 이후의 세계관을 실학자 하백원과 최한기의 지도를 통해 조명해 보았다.

박희주 관장은 “지봉 이수광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당시 지식인과 달리 세계 속에서 조선을 인식한 세계인이었다”고 말하며, 아울러 관람객들이 “베트남에 자신의 시를 유행시킬 정도로 조선을 대표한 지성인이자 한류를 선도한 이수광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리라”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실학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실학콘텐츠의 역사적 의의를 중심에 두고 앞으로도 다양한 전시문화연출을 시험함으로써 경기도민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다양한 문화향유의 플랫폼을 체험해 나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전시개요
○ 전시명 : 실학박물관 상반기 특별전 개최 <지봉유설, 신화를 넘어 세계를 기록하다>
○ 개막식 : 2019. 4. 15(월) / 15:00
○ 기 간 : 2019. 4. 15(월) ~ 2019. 7. 7(일)
○ 장 소 : 실학박물관 기획전시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 내 용 : 우리나라 문화백과사전의 효시라 일컬어지는『지봉유설』을 조명하고 이수광의 세계인식을 살펴보는 전시
■ 전시소개
○ 1부 “지봉 이수광은 누구인가”에서는 왕족의 후예이자 선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이수광의 생애를 조명하였다. 이수광은 승문원을 시작으로 예문관, 성균관, 사헌부, 사간원 등 요직을 거쳐 28세의 나이에 병조좌랑이 되고 문장력을 인정받아 임금의 교서를 짓는 지제교를 겸직하였다. 개방적인 학문 태도는 『지봉유설』 탄생의 동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서울 명류들의 문화공간인 침류대枕流臺는 이수광에게 의미 있는 장소였다. 침류대는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창덕궁 서쪽 정업원 부근에 있는 그윽한 계곡에 석대石臺를 집삼아 살면서 시를 읊은 데서 유래한다. 이곳은 서울의 문인들이 모여 문학을 나누는 교유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이수광은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당색을 초월하여 교유했다. ‘침류대 학사’라 불리었던 김현성·신흠·차천로 등과 문학으로 교유했고, 이들은 『지봉유설』의 편찬에도 조력했다.

○ 2부 “국제적 감각으로 세계를 읽다”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가득했던『지봉유설』의 정보 원척을 탐색해 보았다. 이수광은 세 차례의 중국 사행을 통해 북경에서 안남[베트남], 유구[오키나와], 섬라국[타이]의 사신들과 직접 교유하며 생생한 정보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대 중국에서 간행된 『대명일통지』, 『문헌통고』 등을 섭렵했고, 조선에 전해오던 문헌들도 폭넓게 활용했다. 특히 조선에 전래된 마테오리치가 제작한 ‘구라파국여지도’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수광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 3부 “관념의 중화세계를 그리다”에서는 개방적인 이수광의 세계관과 달리 당시 보수적이고 관념적인 유교적 세계관을 다루었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중심으로 주변국을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유교주의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었다.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중화적 세계관은 더욱 굳어져 갔다. 명·청의 교체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조선 지식인들은 조선만이 문명의 마지막 등불이라는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확산시키며 문화적 충격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상으로 여겼던 문명세계를 지도에 담았다.

○ 4부 “사실의 세계에 다가가다”에서는 신화와 관념에 머물러 있던 세계인식이『지봉유설』을 기점으로 사실의 영역으로 전환되어 가는 모습을 전시에 담았다. 19세기 실학자 하백원河百源과 최한기崔漢綺가 그린 세계지도는 조선 지식사회의 인식변화를 알려주는 지도들이다. 호남의 지식인 하백원은 알레니가 그린 「만국전도」를 모사했고, 최한기와 김정호는 장정부莊廷敷가 그린 「지구전후도」를 목판으로 인쇄하여 배포했다. 밀려드는 서구문물과 변화하던 동아시아의 정세 하에 최한기 등은 폐쇄적인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고 관념을 넘어 세계로의 인식을 바로 할 것을 주장했다.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편찬한 지 200여년 후였다.
■ 전시유물
① 김현성의 문집, 남창잡고南窓雜稿, 17세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남창 김현성金玄成(1542∼1621)의 시문집으로 총 138수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김현성은 이수광 보다 21세 연상이지만,『지봉유설』 초고가 완성되자 교정도 해주고 서문도 써줄 정도로 가장 친하고 오래 사귄 인물이다.『지봉유설』을 가리켜 “귀머거리에게 세 귀가 생기고, 장님에게 네 개의 눈이 얻어진 것과 같다.”고 평했다. 1564년 문과 급제 후 양주목사와 여주목사를 역임했다. 시서화에 두루 능했고, 특히 시와 글씨에 뛰어났다.

② 이수광이 박정에게 보낸 송별시, 1625년,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
이수광이 1625년 가을 함평현감으로 부임하는 박정朴炡(1596~1632)을 송별하며 쓴 시이다. 인조반정 직후에 홍문관(弘文館) 정자(正字), 박사(博士), 응교(應敎) 등을 역임했기 때문에 학사(學士)라고 칭한 것이다. 당시 박정은 대사헌 남이공南以恭을 탄핵하다 도리어 지방으로 좌천가는 처지였다.

③ 조선 최초의 백과전서, 지봉유설芝峯類說, 1634년, 실학박물관 소장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전서로 20권 10책이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이수광의 나이 52세 때인 1614년에 완성했다. 이후 1634년 그의 아들 성구聖求와 민구敏求에 의하여 『지봉선생집』과 함께 간행되었다. 이수광이 개척한 실용의 학풍은 이후 이익의 『성호사설』, 조재삼의 『송남잡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의 백과전서 간행으로 계승되었다.

④ 이수광의 문집, 지봉선생집芝峯先生集, 1634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이수광의 문집으로 34권 11책이다. 1634년 아들인 성구聖求와 민구敏求가 간행했다. 대부분 시문 내용이다. 이 문집에 실려 있는 「안남국사신창화문답록」과 「유구사신증답록」은 당시의 안남과 유구의 관제·풍속 등을 아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수진무실차자修陳懋實箚子」는 이수광의 실사구시적 학문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경기문화재단이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작품 사진의 경우 작품저작권자의 권리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문의 후 이용 바랍니다.
댓글 [0]
댓글달기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이 필요합니다.
이전 다음 미분류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