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일부터 2010년 2월까지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한 자리에서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은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11월 2일부터 내년 2월까지 <조선왕릉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6월 유네스코가 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27대 왕과 왕비를 비롯,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능 40기로, 이 가운데 31기가 경기도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7년 조선왕릉의 등재 여부 평가를 위해 방한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관계자들은 조선왕릉을 둘러보고 왕릉이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역사·문화적 가치에 매료되었다. 특히 500년 동안 지속된 한 왕조의 무덤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세계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경기도박물관은 도민들에게 조선왕릉의 매력과 역사적 가치를 음미하고 재발견 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들을 모아 이번 사진전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는 전문사진작가인 최진연·이선종씨 등이 촬영한 왕릉사진과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대여한 자료 및 사진 등 약 85점의 전시물을 4부로 구성해 전시할 계획이다. 제1부 ”신성 공간, 왕릉의 세계”는 조선시대 국장 절차 및 왕릉의 상설(배치) 등에 대한 설명과 동부, 중부(서울), 서부 및 북한 지역에 있는 조선왕릉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제2부 ”왕릉의 세계”에서는 자연과 조선왕릉이 빚어내는 사계절의 변화상을 감각적인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제3부는 장명등, 문·무석인, 말과 호랑이, 난간석 등 시대에 따라 변천했던 ”왕릉 석물의 꾸밈새”를 보여준다. 제4부 ”살아있는 왕릉”은 순종황제의 국장 모습과 능역 조성 장면, 그리고 단종 국장행렬 행사 재현 현장과 왕릉의 제향 장면 등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의 면모를 담았다. 《조선왕릉 사진전》은 내년 2월 21일까지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며, 한말 왕실의 사진과 어진을 편집한 슬라이드 쇼와 리어스크린을 활용한 사진 찍기, 퍼즐 맞추기, 영상물인 ”조선왕릉의 비밀” 등 다양한 체험도 즐길 수 있다. ★ 문 의 :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김준권 ☏ 031-288-5351
조선왕릉은 유교와 풍수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점, 모든 왕릉에서 매년 제례가 행해져 왕릉이 박제된 옛 유산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점, 그 조성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왕릉의 전 구역이 통합적으로 잘 보존·관리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세계유산 등재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의 무덤이지만 폐위돼 대군묘로 조성된 연산군묘와 광해군묘, 그리고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의 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 조선시대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이 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인 원(園)이 13기, 그 외 왕족의 무덤인 묘(墓)가 64기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40기의 조선왕릉 중 31기는 경기도에 있는데, 이는 왕릉을 조성할 당시 한양으로부터 10리(약4km)에서 100리(약40km) 내외에 왕실의 능역을 두도록 했던 때문이다. 오늘날 서울의 영역이 넓어진 것을 감안하면, 강원도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왕능이 옛 경기도에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조선시대 국상이 나면 경기도의 백성들이 가장 많이 능역 조성에 동원되었으며, 경기도관찰사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왕릉을 잘 관리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조선왕능과 경기도와의 관계가 단순히 지리적 연관을 넘어 역사적·문화적으로도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말해준다. □ 조선왕릉은 산 자의 공간인 궁궐과 조상신으로 숭배받는 종묘의 중간 단계의 조형물로 삶과 죽음의 세계가 교차되는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왕릉을 보다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는 방법은 능에 묻힌 왕의 인간적 모습과 왕릉을 연결지어보는 것이다.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었던 태조 건원릉의 봉분에는 푸른 잔디 대신 억새가 심겨져 있는데, 죽기 전 유독 고향을 그리워했던 이성계를 위해 태종이 고향인 함흥 땅에서 억새를 가져와 심게 했다고 전한다.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뒤 동대문 밖 초가에서 일생 동안 단종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하여 능호에 ”생각사(思)”자가 붙은 사릉이라 하였다. 세조는 능 주변의 나무를 잘 가꾸라는 유언을 남겨, 덕분에 광릉 일대의 숲은 조선왕조 내내 풀 한 포기도 뽑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현재 동식물의 낙원이자 천연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고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성숙한 태평성대를 이룬 공로로 묘호에 ”이룰성(成)”자를 받은 성종의 선릉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의 테헤란로에 위치하여 도심 속 녹지를 유지하고 있다. 유명한 태릉은 ”조선의 측천무후”, ”철의 왕비”라는 세간의 평을 받았던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능인데, 사후 자신이 중종과 함께 묻히고자 하였으나 새로 옮긴 중종 정릉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들어차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는 일제에 의해 ”이왕”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을 기하여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순종이 묻힌 유릉은 고종의 홍릉과 같이 황제릉으로 조성되었으며, 홍릉에 비해 능역이 다소 줄었으나, 문·무석인을 비롯한 전체 석물의 조각은 홍릉보다 사실적이고 뛰어난 기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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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조선왕릉 사진전》개막
admin - 200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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