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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서화실 테마전-옛 그림으로 읽는 경기도청 이야기
admin - 2013.06.30
조회 3032

경기도박물관 서화실 테마전

옛 그림으로 읽는 경기도청 이야기

옛날 경기도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기도지사인 경기도관찰사는 어떤 일을 했으며, 경기도청은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원복)에서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옛날 경기도청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은 테마전을 준비했다. 7월 2일(화)부터 박물관 서화실에서 개막되는 “옛 그림으로 읽는 경기도청 이야기”에서 그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다.

1. 경기감영(京畿監營)은 왜 서울에 있었을까? 2. 경기감영에서 경기도청으로 3. 경기도관찰사는 어떤 일을 했을까? 등으로 구성된 이번 테마전시를 살며시 들여다본다.

1. 경기감영京畿監營은 왜 서울에 있었을까?

지금의 경기도청인 경기감영은 경기도 행정의 중심이자 관찰사가 집무하던 곳이다. 조선 건국 후 ‘경기좌․우도’로 나뉘어 운영되었던 경기도는 1413년(태종 13) ‘경기도’로 개칭하고, 그 감영을 수원에 처음 설치하여 관찰사를 파견했다. 이후 경기관찰사는 광주목사를 겸임했기 때문에 광주로 이전되었다가 세조 때 한성부 의주로로 옮겨졌다. 특히 의주로는 중국과의 외교와 국방상 주요 도로였기 때문에 경기감영의 한성부 이전은 북방 방비 및 도성 수비와 관련이 깊다. 이로써 경기감영은 경기도를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이면서도 한성부에 있어 제도와 공간이 다른 특이한 운영체제를 갖게 되었다.

2. 경기감영에서 경기도청으로

경기감영의 명칭 및 위치는 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와 함께한다. 1896년 전국 지방제도가 23부에서 13도제로 개정되어 한성부는 경기도에서 독립된다. 이때 수원 화성행궁은 경기도관찰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일제의 통감통치로 1910년 10월 서울이 한성부에서 경성부로 이름이 바뀌고, 수원에 있던 감영은 서울 광화문 앞으로 옮겨졌다. 또 조선시대에 감영, 한말에 관찰부는 일제 식민통치정책에 따라 경기도청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기도관찰사는 도장관으로 고쳐졌고, 1919년 8월부터 도지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10년 12월 광화문 앞에 새로 지어진 경기도청사는 이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경기도청이 되었다. 광복 후 격동의 시대에도 경기도 행정을 수행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수원 북수동에 있던 화성군청사를 임시청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7년 6월 23일 현재의 위치인 수원시 매산로에 자리잡아 이전(移轉)의 역사가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3. 12폭 병풍에 담긴 경기감영

12폭 병풍에 담긴 경기감영(京畿監營圖十二幅屛風)은 18~19세기 서울 반송방 일대(현 서대문구와 종로구 일대)를 담고 있다. 경기도의 관아와 주요 시설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회화 형식의 지도이자 기록화이다. 12폭의 화면에는 돈의문 밖에서 인왕산·안산·북악산에 이르는 지역을 파노라마식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묘사했으며, 근경·중경·원경에 따라 굽어보는 각도를 달리하여 제한된 화면에 넓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건물들은 대체로 옆으로 빗겨 보고 평행사선을 이루도록 하는 평행사선도법(平行斜線圖法)으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의 작자와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41년에서 189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9폭에 묘사된 천연정이 1741년(영조 17)에 지어진 것이고, 제8폭 위쪽의 영은문이 1895년 김홍집 내각에 의해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4. 경기관찰사, 경기도지사의 옛 이름

관찰사는 조선시대에 각 도에 파견된 지방장관으로, 각 군현의 수령을 감찰하고 도의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관리였다. 농사를 관리하고 흉년이나 기근이 있을 때 백성을 구제했으며, 조세·공납 등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할 임무가 있었다. 사법적인 업무로 형옥과 소송의 판결권이 있었고, 군사지휘권도 있어 군사의 모집과 훈련을 감독하는 한편, 방비를 위한 축성 사업을 관리하거나 전쟁에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기도 하였다.

경기감영이 한성부에 있었던 것은 다른 도와 달리 경기도가 왕실과 관련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기도관찰사는 궁궐에 들어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 많았고, 국왕은 경기도에 있는 왕릉들을 1년에 몇 차례씩 행차해야 했기 때문에 왕실의 능들을 관리하는 것 역시 경기도관찰사의 특징적인 업무 중 하나였다. 또 경기도관찰사의 명으로 1831년(순조 31)에는 상평통보가 경기감영에서도 만들어졌다. 이때 발행한 동전은 당일전·당이전·당오전 등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경기감영도〉(모사본)을 비롯하여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송언신(宋言愼,1542~1612) 초상(보물 제941호)과 이인엽(李宜顯,1669~1745)초상, 조선후기 경기도관찰사 등이 기록된 관리들의 명단인 관안(官案), 조선 왕릉의 관리를 위해 경기관찰사에게 내린 예조의 공문서인 예조관문(禮曹關文), 경기감영에서 주조한 상평통보 등이 전시된다. 전시기간 2013년 7월 2일부터 연중, 관람시간 오전10시부터 오후 6시, 관람료 4,000원(경기도민 50% 할인), 문의 031) 28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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