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대전리산성 학술회의
(주제: 대전리산성, 매초성인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과 연천군(군수 김규선)은 오는 17일(목) 14시 연천 수레울아트홀에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에 관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주제는 ‘대전리산성, 매초성인가’이다.
대전리산성은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와 장탄리의 경계지역에 있으며, 둘레 680m에 면적은 13,000여㎡인 소규모 산성이지만 주변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전리산성은 우리의 반만 년 역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당 세력을 물리친 결정적인 싸움을 매초성 전투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675년에 신라는 매초성에 주둔하고 있던 당나라군 20만 명을 무찌르고 말 3만여 필을 빼앗는 대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 매초성이 오늘날 어느 곳인가를 두고 학계에서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주목되는 곳이 바로 대전리산성이다.
이에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는 대전리산성의 현황과 성격을 파악하고 대전리산성을 매초성으로 비정할 수 있는지 적합성을 살펴보고자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산성에 대한 시굴·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 몸체의 축성기법 및 출토된 유물 등으로 미루어 산성이 처음 축조된 시기를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하게 되었다. 이는 신라와 당의 전쟁에 대전리산성이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전리산성이 매초성으로 비정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대전리산성 학술회의는 이같은 산성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개최하게 되었는데, 과연 대전리산성을 매초성으로 볼 수 있느냐의 여부에 최대의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제 발표는 나당전쟁 시기의 국제적 배경, 축성기법으로 통해 본 대전리산성의 역사적 위상, 연천 지역의 주요 간선로, 대당 전쟁의 격전지, 산성의 활용방안 등 다섯 가지로 나뉘어 진행되며, 역사학·고고학·군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참석자의 열띤 토론이 예상된다.
문의 231-8575(경기문화재연구원), 839-2144(연천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