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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학술연구총서 ‘서운관의 천문의기’
admin - 2017.07.05
조회 1156
실학박물관 학술연구총서
‘서운관의 천문의기’
실학박물관(관장 장덕호)은 실학연구총서 열번째 책 ‘서운관의 천문의기’을 발간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대한민국학술원회원인 정기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실학박물관은 실학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매년 ‘실학연구총서’을 발간하고 있다. ‘서운관의 천문의기’는 조선시대 천문학 연구의 기반암이 되는 기초연구다. 큰 건축물을 지을 때 튼튼한 기반암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연구 분야에서도 기초가 중요하다.

저자인 정기준 명예교수는 전공 분야인 계량경제학의 좌표변환과 투영 이론을 바탕으로 세종 시대의 해시계인 ‘앙부일구’에서부터 17세기 서양 천문학이 전래된 이후 만들어진 이슬람식 천문의기 ‘아스트로라브’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천문의기를 색다를 각도로 조망하고 있다.

영국의 과학사학자인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에서 조선의 과학을 언급하지 않고는 결코 완성된 한자 문명권 과학사를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서운관의 천문기구와 시계(The Hall of Heavenly Records, 1986)’에서는 세종 때의 천문의기를 고찰해 한국 천문학의 가치를 드러냈다. 니덤 이후로 국내에는 조선 천문학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조선 천문학 중 가장 많이 연구되는 시기가 세종시대다. 우리 역사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일컬어지는 세종 시대의 조선 천문학은 사실상 이슬람 문명 등 세계의 문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결성을 무시하고는 세종 대의 천문학은 이해될 수 없다.

세종은 시공간을 인식하는 기술을 중국 힘을 빌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세종 대 천문학은 세계 천문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면 당시 세계 천문학의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저자는 “15세기 세계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올바르게 상정하지 않고는 세종 대의 천문학은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세종은 왜 그토록 천문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지금까지 한국천문학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종대의 천문학 발전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학문으로서, 천문학의 발전은 곧 국력과 관련된다”

과거 망망대해에서 혹은 오지에서 천문관측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은 최고의 일급비밀이자 국력이었다. 시공간을 인식하는 기술은 오늘날에도 최고의 과학 기술이자 국력이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덕을 보고 있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은 시공간의 인식체계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미국의 소유물이다. 그러나 무료란 것은 언제나 가장 값비싼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무료로 즐기다가 스위치를 쥐고 있는 측에서 시스템을 꺼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이 위험을 알기 때문에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 인도 등은 많은 돈을 들여, GPS를 대신할 독자적 시스템의 구축에 나서고 있다. 다시 말해 시공간의 인식체계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이것은 과거 현재를 통틀어 국력의 문제인 것이다.

시공간을 인식하는 데 있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좌표 개념이다. 저자는 좌표개념이 왜 중요한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의 38도선은 적도를 중심으로 서른여덟번째 평행선 북위 38도선’을 가리킨다.‘삼팔선’은 한반도 차원의 위치 개념이 아니라 전지구적 관점의 위치 즉 좌표 개념인 것이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도 북위 38도선에 위치해 있다. 삼팔선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쪽으로 ‘똑바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삼팔선을 따라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진행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지구가 공 모양의 구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방향을 바꾸지 않고 똑바로 진행한다면 결국 북극에 도달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면 남극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 방향을 바꾸지 않고 똑바로 동쪽으로 진행한다면 결국 미국 땅에 도달할까? ‘아니다’라고 하면 놀랄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가 정답이다. 미국이 아니라 저 남쪽의 칠레에 도착한다.

서쪽으로 이동할 때 우리가 쉽게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백령도의 위도다. 백령도는 분명히 삼팔선 이남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 대다수는 백령도가 38선 보다 북쪽에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각적 좌표와 실제 좌표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백령도의 위치를 실제 위치보다 훨씬 북쪽에 그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의 감각적 동서선이 전지구적 위선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김정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동여지도〉를 그려내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적도좌표로서의 위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김정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땅을 평평한 것으로 오랫동안 인식한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삼팔선을 정의한 좌표와 동쪽으로 똑바로 진행하는 경로를 나타내는 좌표는 그 좌표체계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좌표체계 사이에는 어떤 합리적인 변환규칙이 있어야 하는데, 서로 다른 좌표체계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하여야만 고천문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중요한 관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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