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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 개최
admin - 2018.10.16
조회 892
실학박물관,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 개최
▶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일생을 마친 역사적인 장소에서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 진행
▶ 다산 정약용, 한강변 고향에 돌아오다!


2018년은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인 정약용이 18년의 긴 유배를 마치고 고향인 마재(馬峴,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돌아와 대표작인 『목민심서』를 완성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약용의 고향인 남양주에 위치한 실학박물관은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1818년 가을, 마침내 유배가 풀리다

정약용은 200년 전인 1818년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 있었다. 그는 유배 신세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저작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유교 경전의 모든 뜻을 밝혀서 정리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유교 경전의 뜻을 밝히고 나자 이를 토대로 경세서經世書의 저작에 돌입했다. 1817년 ?경세유표?를 비롯하여 1818년 봄에는 ?목민심서?를 완성했다.
왕성한 학문과 저술활동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의 가족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사무쳤을 것이다. 1806년 신유옥사를 일으켰던 노론 벽파가 모두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의 유배는 풀리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징을 울려 원통함을 호소하여, 벼슬 없이 고향에 돌아가게 하는 벌로 낮추었으나,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 끝내 유배가 풀리지 못했다(1810). 그 후 죄인 명부에서 삭제되어 해배解配(유배에서 풀어줌) 관문關文(동급 또는 하급 관에 보내는 공문서)을 보내주려 했으나, 또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 유배가 풀리지 않았다(1814).
아버지의 해배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아들이 해배를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애걸하는 편지를 쓰도록 권유했다. 그때 정약용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도 않고 성공하기도 힘들다며 천명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1816). 하늘은 그가 ?목민심서?를 완성하기까지 기다렸던 것일까. ?목민심서?를 완성한 그해 가을에 정약용에게 해배 소식이 날아온다.

무인년(1818, 순조 18) 여름 응교應敎 이태순李泰淳이 상소하여 말했다. “대계臺啓가 정지되었는데도 금부禁府의 관문關文을 보내지 않는 것은 국조國朝 이래 없던 일이니, 유폐流弊가 무궁하게 될 것입니다.” 상신相臣 남공철南公轍이 금부의 제신諸臣을 책망하니, 판의금부사 김희순金羲淳이 곧 관문을 보내었다.(「자찬묘지명」)

정약용의 유배가 마침내 풀린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곧 만나게 될 가족과 고향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자신과 함께 했던 강진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 세월이었다. 강진에서 18명의 해배길 도보단이 구성되어 10월 9일 강진을 출발하여 해뱃길을 재현한다.

“다산 정약용, 한강변 고향에 돌아오다!”

정약용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다. 가족들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정약용의 감회는 얼마나 컸을까. 해배길 도보단의 도착을 맞이하며 시작한 길놀이 장면을 통해 그런 기분을 일부나마 느껴 보고자 한다. 풍물굿패 삶터(터장: 이성호)의 선도로 남양주 다산유적지 입구부터 생가(여유당) 마당까지 길놀이와 고유제로 꾸며진다.
해배길 도보단이 출발 전에 다산초당에서 고유제를 지냈듯, 도착을 알리는 고유제를 지낸다. 생가 뒤 언덕에 있는 묘소가 적당한 장소이나, 많은 일반시민들이 함께 하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고 판단하여 문도사 사당에서 지낼 예정이다. 집사들은 지역 주민들로 구성했다. 사례가식四禮家式 중 제례고정의 제향방식을 원용하여 추진할 예정이다.
제사 후에 환영사와 기념사의 간단한 의식이 있다. 박석무 이사장(다산연구소), 장덕호 관장(실학박물관)의 인사가 있을 예정이다.
도착행사장에도 차 음료가 제공된다. 그동안 도와주었던 운길산 수종사 삼정다회에서 운영한다.
정약용이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제도개혁을 통해서 이루고자 한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관리 임용과 공무 수행이 공정하고 청렴하여 공적 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여, 백성의 살림이나 나라의 살림이 충분하기를 기대했다. 사회적 약자도 잘 보살펴주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 결과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에 자애롭고, 형제간에 우애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정약용이 꿈꾼 세상이 아니었을까.
행사개요
“다산 정약용, 한강변 고향에 돌아오다”
일시
2018년 10월 21일(일) 16:00~17:15
장소
남양주 다산유적지(다산생가)
내용
정약용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것을 함께 기뻐하는 행사
주관
실학박물관 / (사)다산연구소
캡션
구 분 시 간 장 소 내 용
 1. 길놀이 16:00~16:30  다산유적지 풍물굿패 삶터(이성호 터장)의 길놀이와 난장 한마당
2. 고유제 16:30~17:00  문도사 마을 주민들과 함께 
3. 도착식 17:00~17:15 문도사 마당 환영사/기념사
*시간과 내용은 다소 변경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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