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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2013 문화바우처 기획사업- 가가호호 문화교감
경기도 내 사회복지관·시설 공모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는 2013년 문화이용권(문화바우처)기획사업 중 <가가호호家家好好?! 문화교감>사업에 참여 할 도내 사회복지관·시설 공모를 오는 7월 12일(금)까지 진행한다.

<가가호호家家好好?! 문화교감>사업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지리적인 여건 등으로 인해 문화생활이 어려운 도민들을 예술가가 직접 찾아가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나눔 사업이다.

예술가는 유랑하듯 관객을 만나고, 관객은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예술을 향유하는 예술유랑 프로젝트인 <가가호호家家好好?! 문화교감>사업은 지난 6월 공모를 통해 36개 예술단체를 선정했으며, 그 중 10개의 예술단체가 다양한 예술장르(국악극, 인형극, 마당극, 악극, 클래식 등)의 작품들로 경기도민을 찾아간다.

<가가호호家家好好?! 문화교감> 예술단체 신청은 경기문화재단 문화포털 (http://www.ggcf.or.kr/)에서 신청 할 수 있다.


2013 문화이용권 기획사업 예술단체 명단
2013 문화이용권 기획사업 예술단체 명단에 관한 표입니다.
연번 장르 대상 단체명 프로그램명
1 국악극 어린이 민들레놀이극연구소 방방곡곡 신명과 감동을! 책 공연 <돈 도깨비>
2 영화 장애인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어린이를 위한 찾아가는 배리어프리-시네마 택배
3 민요 다문화 아시아민요그룹 아리아시아 아시아민요콘서트 <우리 하나가 되어>
4 인형극 노인 사)경기인형극진흥회 인형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5 마당극 모두 극단 마중물 찾아가는 신나는 타령장단 놀이극 <호랑이 오빠 얼쑤>
6 악극 모두 신명나게 나누는 세상 찾아가는 트롯트 악극 <은애 아씨전>
7 마당극 모두 극단 현장 찾아가는 마당극 <요절복동 장터유랑기>
8 국악극 모두 예비사회적 기업 살판 함께하는 풍물 수다 <도리도리 뱅뱅>
9 클래식 모두 앙상블온 앙상블온의 힐링소나타
10 낭독 시각
장애인/
노인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 장애인을 찾아가는 소리극 낭독 콘서트



문의: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 박소현 (031-231-7274/ ctspace@ggcf. or.kr)
2013.07.03
<기계, 생명을 꿈꾸다>
machine, dreaming of life


▶ 기계,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다.
인간의 창조물인 기계를 통해 미래의 창조 욕망을 꿈꾸는 인간사회 조명
▶ 인간과 기계의 사회를 바라본 예술가들의 작품전시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 속 인간의 삶을 기계 오브제를 사용하여 제작된 작품소개
▶ 현대미술 속 기계적 메카니즘을 통한 예술작품소개
1932년 기계미전시의 외형적 오브제에서 현대미술의 기계 메카닉(원리, 운동) 오브제의 활용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관람하는 계기마련


■ 전시개요
○ 전 시 명 : 2013년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기계, 생명을 꿈꾸다>
○ 기 간 : 2013. 7. 5(금)~ 2013. 9. 22(일) (총 81일)
○ 오픈 초대일시 : 2013. 7. 25(목) 오후 4시(예정)
○ 장 소 :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b,c존)
○ 주 최 : 경기도미술관
○ 협 찬 : (주)bmw 그룹 코리아, 하비스(hobby’s), o.v.j_박귀흠, 아셈하비(asem hobby)
○ 전시내용 : 회화, 설치, 조각, 영상작품 60여점, sf 모형작품 50여점
○ 참여작가 : 김동호, 김명훈, 김성진, 김원화, 김진희, 박기일, 박안식, 박종영, 손종준, 심성운, 이병주, 이장원, 임동열, 장승효, 장재록, 우상운_하비스, 박귀흠(16명, 1팀)
경기도미술관(관장 최효준)은 7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기계, 생명을 꿈꾸다> 전시를 개최한다. 경기도미술관이 올해 들어 네 번째로 기획하는 전시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통해 우리사회의 기계적 삶과 미래에 대한 객관적 고찰이 가능한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접근하는데, “기계의 순수함”, “인간:기계=1;1”, “기계의 독립”으로 구분한다. “기계의 순수함”은 인류기원에서 도구의 발달로 시작된 기능적 미(美)를, “인간:기계=1:1”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 의한 동작성과 예술작품 안에서의 인터렉티브(interactive), 그리고 “기계의 독립”은 기계가 꿈꾸는 미래가 곧 인간이 만들어내는 욕망의 꿈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1. 기계의 순수함
“인간은 기계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예술을 통해 기능이라는 심미적 가치를 표현하였다. 기능은 기계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며, 기계만이 만들어내는 순수미를 예술가들에 의해 표현되게 된다. 어쩌면 예술은 순수 기계 기능성에 동조하며 인간사회 역설적 모순을 비판하는지도 모른다.”
한 tv광고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성과 잘 다듬어진 근육의 남성이 역동적인 디자인의 자동차를 몰고 질주하는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저 사람을 갖고 싶다 라는 마음 보다는 저 차에 자신이 운전하는 꿈을 꾼다. 굉음의 엔진과 함께 홀로 질주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당장이라도 자동차 전시장에 가서 계약하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이라는 벽에 자기적 계산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장재록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명차들은 갖고자 하는 욕구를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사람들은 물질로 대변되는 많은 부속물에 살아간다. 작가가 말하는 물질속의 본질을 보라는 메시지는 눈앞의 기계(머신)의 순수한 형태에 잊힐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소유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구입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한 일들로, 기계적 메커니즘을 모른다 해도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보고 실내의 계기판을 보며 다양한 상상을 한다. 비록 내가 엔지니어가 아니라도 기계구조를 이해하듯 그 기계의 순수한 형태에 “예술”이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퍼 부을 것이다. 전시장의 박기일 작가의 작품 속 엔진이 내차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이다.

2. 인간:기계=1:1
“기계의 움직임은 예술 안에 새로운 오브제 발견된다. 20세기 미술 안에 움직이라는 오브제는 하나의 틀 안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각적 반응과 신체적 행위에 의한 참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조작을 통해 창조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해외토픽에 흥미로운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중국 고사인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실제로 행한 인도의 노인이야기이다. 노인은 십년이라는 세월동안 삽 한 자루로 산을 퍼 날랐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인도와 중국의 경우는 언제라도 일어날 일이었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성능 좋은 굴착기 몇 대가 몇일이면 해결한 문제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이 기사의 노인도 “삽”이라는 기계를 사용하였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기계라는 개념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삽도 없이 손으로 산을 옮겼다면, 삽도 기계이다. 인간이 더 효율성 있는 삶을 살고자 고안한 기계들은 지금도 여전히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단지 그 역할에 우리의 작은 운동이 기계의 큰 운동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조작하지 않은 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기계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관람객의 작은 운동을 기다리고 있다. 기계와 인간이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현대미술의 작품은 홀로 움직일 수 없다. 관람객의 뜨거운 관심과 운동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된다. “우공이산”의 대역사를 눈앞에서 이룰 수는 없지만 작품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예술영역이라는 운동성을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3. 기계의 독립
“인간은 기계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기계를 인간의 창조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물인 기계를 통해 스스로의 나약함에 불안해하며, 부정적 시선을 던진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느끼는 배신감을 기계를 통해 느끼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영화의 소재들이 거대로봇과 기계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주인공 홀로 고군분투하는 영화들로 넘쳐 난다. 암울한 미래에 기계들을 피해 사람들은 지하에 숨어들며, 기계를 원망하고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고는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간형 로봇이 “엄마”보다 무섭다는 아이들의 눈에는 공상과학 영화가 아닌 현실성을 갖는다. 그 무서움도 잠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책 읽는 것보다는 아이패드를 만지며, 모 통신사의 학습로봇을 품에 안고 기계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순간 기계는 우리 삶속의 대부분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1970~1980년대 영화 속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기계들이 현실에 등장하고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현실 속 기계들이 전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처럼 인간을 찾아 제거하는 일은 하지 않으니 말이다.
전시장의 심성운, 김성진 작가의 작품들이 상상속의 기계들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현재시점에서 보이는 문제이다. 먼 훗날 아니 가까운 미래 이 기계덩어리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소유물이 된다고 여긴다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다 싶다. 전시장안의 예술작품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는 무수한 기계들이 존재하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끊임없이 당신의 일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인지하자.
얼마 전 모 리서치의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었다. “당신은 얼마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십니까?” 결과는 충격적이다. 대부분 1~2개 정도의 번호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전화번호 수첩이라는 깜찍한(?) 수첩이 존재할 때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지만, 현실은 언제나 스마트하고 거대기능의 핸드폰이 존재하기에 불필요한 요식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까 스마트폰이 다운(shut down)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패닉상태로 돌변한다. 이런 배신감은 기계를 고안한 설계자까지 원망하는 심리적 전이를 맛보게 한다. “스마트폰”이 없었더라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패배한 느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자기 제어능력을 벗어난 기계를 보며 조물주가 느끼는 배신감을 맛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계는 인간이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 모인 17명의 작가는 인간사회 속에 존재하며 기계 매커니즘을 통해 예술이라는 언어로 호소한다. 적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통해서라도 긍극적 목표를 이룩하고자 창조한다. 그렇다면 전시에 등장하는 기계들이 거대하거나 비예술적 오브제를 사용한다고 예술이 아닌 기계의 모방이라는 논지는 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순수예술이나 키네틱, 기계미학으로 정의되는 미적 논지보다는 현실을 수용한 예술가들의 태도가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을 보며 예술적 가치를 논하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순수한 인간이 관람자이며, 인간이 창조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프로잭트 갤러리
1980~19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학교 앞 문방구와 과학사에서 판매한 프라모델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년기를 지나 청·장년층을 지나 그 프라모델이 일본의 복제품이었다는 사실에 식음을 전폐한 분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 역시 그 경험에 한 동안 모델업계를 등지고 산적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모델을 만들며 무한한 상상으로 로봇의 조정사가 되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한가운데 의로운 조정사가 된 경험을 제공해 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2013년 경기도미술관의 프로젝트 갤러리에서는 옛 추억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 동안 음지의 취미(?)로 불리며 외면당했던 모형제작자와 동호회원들이 기계전시와 그 뜻을 같이 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한 때 일본의 오타쿠(otaku , 御宅,おた)적 메니+악(maniac , マニア , 狂 +악(惡))이라는 오명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지 못하였던 모형가들이, 기계와 인간이라는 거대 주제를 바탕으로 실제 모형을 이용하여 장면을 설정한 디오라마(diorama)와 창작모형들이 전시된다. 이제는 양지의 새로운 예술영역으로 그 확장을 시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감상포인트
○ 기계 오브제를 사용한 다양한 현대미술작품 관람
: (주)bmw 그룹 코리아 후원의 자동차 엔진과 현대미술의 접목
○ 기획전시장이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구성된 전시 디스플레이 효과 확인
○ 예술작품 속 기계메커니즘은 작가의 드로잉과 설계도를 통해 과학적 접근방식을 확인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동작함으로써 참여형 전시로 기획
○ 기획전시장과 연계된 프로젝트 갤러리의 sf 모형전을 통한 새로운 현대미술장르 가능성 확인
<특별전시>
○ “프로젝트 갤러리_기계 모형전”
○ 일시 : 7월25일 ~ 9월22일
○ 장소 :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 프로젝트 갤러리
○ 내용 : 2층 기획전시 주제를 활용한 sf 모형전시로, 국내 모형제작작가 2인과 동 호회 회원들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통한 다양한 모형을 전시. 기계·메카닉을 모티브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통한 미래사회를 꿈꾸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보여줌으로써 현대미술의 또 다른 장르를 도전하는 계기마련


■ 전시연계교육프로그램
“전시셀프 가이드”
○ 일시 : 전시 기간중
○ 장소 : 홈페이지 교육자료실
○ 내용 : 전시를 스스로 관람할 수 있는 셀프가이드 구성 및 온라인 배포
2013.07.01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실학 문화심포지움 개최


<주요 내용>
○ 주 제 : 실학문화 심포지움 개최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기간/장소 : 2013. 7. 5.(금) 14:00∼18:00 가평군청 대회의실(3층)
○ 주 최 : 가평문화원,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 후 원 : 가평군, 가평향교
○ 내 용 : 조선 최고의 경세가 김육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관련 유적을 향후 역사문화공간으로 개발 활용하기 위해 발표 토론의 장을 마련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과 가평문화원은 오는 5일(금) 오후 2시부터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조선 최고의 경세가 잠곡 김육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실학문화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한다.
 
재단과 문화원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잠곡 김육 선생의 업적과 정신 계승은 물론 경기 북부지역의 정신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도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제고하자 한다.
 
이날 심포지엄은‘대동범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을 주제로 ▶잠곡 김육 선생 현양을 위한 제언(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잠곡 김육의 생애와 활동(정만조 성호학회 회장) ▶잠곡 김육 유적을 활용한 가평군 문화콘텐츠 개발(강진갑 경기대 교수) 등 다양한 주제발표가 예정돼 있다. 발표 이후에는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을 좌장으로 발표자와 참석자들간의 자유로운 토론 진행된다.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은 조선시대 최대의 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추진한 큰 학자이자 관료였다. 그는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가평군 청덕동(현 청평)에 은거하여 10여 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야인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가평지역은 조선의 개혁을 꿈꾸며 실학적 경륜을 쌓아온 잠곡 선생의 개혁정신의 산실이다.
 
잠곡 선생은 인조반정이후 관직에 나가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시행하고 수레, 수차 및 동전의 도입과 활자의 제작에도 진력했다. 이후 70세에 재상에 올라 충청도의 대동법을 주관했고,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전라도 대동법을 시행하던 중 79세로 별세하였다.
 
잠곡은 진정 백성을 위한 재정 개혁을 이루려 했다. 대동법은 공납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세금으로 내는 현물을 쌀이나 베로 받은 제도였다. 조선시대 공물제도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하였는데, 부담이 불공평하고 수송과 저장에 불편이 많았다. 요컨대 공물로 내는 세금의 계량화 합리화가 어려웠다. 또 방납(防納:대납), 생산되지 않는 공물의 배정 등 관리들의 부패와 해악으로 농민 부담이 커져 있어 잠곡은 이를 중지시키고자 했다. 이 제도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실현에 옮기려다 부정부패에 얽힌 관료들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미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잠곡은 농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제도의 실현을 위해 생애 마지막까지 열정을 다하였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그가 추진했던 대동법과 제반 개혁은 조선후기 사회변화의 기폭제였다. 특산품과 현물을 세금으로 거두는 대신 그것을 쌀로 거둠으로서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민생과 나라가 살아났던 것이다. 실학 탄생의 진정한 배경이었다.
 


[참고자료 1]
※ 실학 문화심포지움 일정
– 주제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일시 : 2013년 7월 5일(금) 14:00~18:00
– 장소 : 가평군청 강당(3층)(경기 가평군 가평읍 석봉로 181)
– 주최 : 가평문화원, 실학박물관
– 후원 : 가평군, 가평향교
– 참석예상 : 300여명


실학 문화심포지움 일정에 관한 표입니다.
시간 내용
13:30~14:00 참석자 등록(방명)
14:00∼14:20 ▶ 개회식
환영사 : 가평문화원장
인 사 : 가평군수
인 사 :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축 사 :
14:20~15:50 ▶ 기조발제 및 주제발표
기조발제 : 잠곡 김육 선생 현양을 위한 제언
발제 : 이성무 교수(학술원 회원, 전 국사편찬위원장)
제1 주제 : 잠곡 김육의 생애와 활동
발표 : 정만조(국민대 명예교수, 성호학회 회장)
제2 주제 : 잠곡 김육 유적을 활용한 가평군 문화콘텐츠 개발
발표 : 강진갑(경기대 교수, 도문화재위원)
15:50~16:00 휴식(장내정리)
16:00~18:00 ▶ 토론 : 좌장 김시업(실학박물관장, 성균관대 명예교수)
발표자 및 관계자, 참석자 누구나 질문·답변하는 토론의 자리


[참고자료 2]
→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경세가(經世家) 잠곡 김육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개혁이 조선 중기 재정 혁명 ‘대동법’임.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였음.
대동법 시행에 앞장선 김육선생은 실학(實學)에 바탕을 둔 경제학(經濟學)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성리학(性理學)을 비롯하여 정치(政治)·천문·지리·병략(兵略)·복서(卜筮)·율력(律曆) 등 다방면에 정통했음.
효종 때 충청도에서의 <대동법(大同法)> 실시와 동전(銅錢) 주조는 그의 탁월한 경제정책의 식견으로 이룩한 업적이라 할 수 있음.

○ 잠곡 김육(金堉, 1580-1658) 소개
– 15세에 부친이 사망하고 조모와 모친을 차례로 잃어 서울의 고모댁에 의탁하였음. 선조38년(1605)년 사마시(司馬試) 합격으로 성균관에 입학
– 광해군 1년(1609)년 동료들과 함께 청종사오현소(請從祀五賢疏: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5인을 문묘에 향사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함.
– 34세에 경기도 가평 잠곡(潛谷)으로 이주한 후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에 진출할 때까지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농사와 숯장사 등으 로 생계를 유지했음
–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올라 금오랑(의금부도사)의 벼슬을 받고 다음 해 봄 이괄의 난으로 임금이 피난하자 모시고 다닌 공으로 음성 현감이 됐고, 그 해 증광문과에 급제, 이어 삼사·이랑을 거쳐 사인·부제학·성균좨주·예조판서를 역임, 효종 2년(1651) 영의정에 이 르렀음.
– 김육이 관료로 진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백 성들의 곤궁한 생활이 극에 달한 시기였음. 충청감사로 있을 때 대동 법을 실시하도록 상소하여 공납의 불균형·부역의 불공평을 없애고자 했으나 왕의 승낙을 받고도 조정에서 실시하지 않았음
– 효종의 즉위(1649년)와 더불어 우의정으로 지내게 된 김육은 각 층 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을 다시 상소해 충청지방에 대동법을 시 행하였음. 대동법이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자 1657년부터 대동법을 호남으로 확대하기를 노력해 김육 선생이 사망하던 해(1658년) 전라 도 연해지역의 농민들이 혜택을 보았음. 이후 전라도 산간지역에, 경 상도에 순차적으로 대동법의 시행이 확산되었음
– 평택시 소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40호)는 대동법의 혜택을 입은 충청도 주민들이 김육의 공덕을 기 리며 충청으로 들어오는 삼남대로의 길목인 평택에 세웠음(1659년)

– 제향서원 : 가평(청평) 잠곡서원(잠곡 김육을 홀로 제향한 곳)
개성 숭양서원 / 설악 미원서원 / 강동 청계서원


[참고자료 3]
잠곡 김육 초상_실학박물관 소장
잠곡 김육 초상_실학박물관 소장

충청도에 시행한 대동법 시행 규정 <<호서대동사목 />> ” src=”http://ggcf.kr/wp-content/uploads/2013/10/885b0c08-623c-4968-a698-5d8e179a3e681.jpg”/><br />
 충청도에 시행한 대동법 시행 규정 <<호서대동사목>>
  <br /></div>			</div>
						<div class=
2013.06.30

경기도박물관 서화실 테마전

옛 그림으로 읽는 경기도청 이야기

옛날 경기도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기도지사인 경기도관찰사는 어떤 일을 했으며, 경기도청은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원복)에서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옛날 경기도청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은 테마전을 준비했다. 7월 2일(화)부터 박물관 서화실에서 개막되는 “옛 그림으로 읽는 경기도청 이야기”에서 그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다.

1. 경기감영(京畿監營)은 왜 서울에 있었을까? 2. 경기감영에서 경기도청으로 3. 경기도관찰사는 어떤 일을 했을까? 등으로 구성된 이번 테마전시를 살며시 들여다본다.

1. 경기감영京畿監營은 왜 서울에 있었을까?

지금의 경기도청인 경기감영은 경기도 행정의 중심이자 관찰사가 집무하던 곳이다. 조선 건국 후 ‘경기좌․우도’로 나뉘어 운영되었던 경기도는 1413년(태종 13) ‘경기도’로 개칭하고, 그 감영을 수원에 처음 설치하여 관찰사를 파견했다. 이후 경기관찰사는 광주목사를 겸임했기 때문에 광주로 이전되었다가 세조 때 한성부 의주로로 옮겨졌다. 특히 의주로는 중국과의 외교와 국방상 주요 도로였기 때문에 경기감영의 한성부 이전은 북방 방비 및 도성 수비와 관련이 깊다. 이로써 경기감영은 경기도를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이면서도 한성부에 있어 제도와 공간이 다른 특이한 운영체제를 갖게 되었다.

2. 경기감영에서 경기도청으로

경기감영의 명칭 및 위치는 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다사다난했던 역사와 함께한다. 1896년 전국 지방제도가 23부에서 13도제로 개정되어 한성부는 경기도에서 독립된다. 이때 수원 화성행궁은 경기도관찰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일제의 통감통치로 1910년 10월 서울이 한성부에서 경성부로 이름이 바뀌고, 수원에 있던 감영은 서울 광화문 앞으로 옮겨졌다. 또 조선시대에 감영, 한말에 관찰부는 일제 식민통치정책에 따라 경기도청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기도관찰사는 도장관으로 고쳐졌고, 1919년 8월부터 도지사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10년 12월 광화문 앞에 새로 지어진 경기도청사는 이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경기도청이 되었다. 광복 후 격동의 시대에도 경기도 행정을 수행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수원 북수동에 있던 화성군청사를 임시청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7년 6월 23일 현재의 위치인 수원시 매산로에 자리잡아 이전(移轉)의 역사가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3. 12폭 병풍에 담긴 경기감영

12폭 병풍에 담긴 경기감영(京畿監營圖十二幅屛風)은 18~19세기 서울 반송방 일대(현 서대문구와 종로구 일대)를 담고 있다. 경기도의 관아와 주요 시설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회화 형식의 지도이자 기록화이다. 12폭의 화면에는 돈의문 밖에서 인왕산·안산·북악산에 이르는 지역을 파노라마식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묘사했으며, 근경·중경·원경에 따라 굽어보는 각도를 달리하여 제한된 화면에 넓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건물들은 대체로 옆으로 빗겨 보고 평행사선을 이루도록 하는 평행사선도법(平行斜線圖法)으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의 작자와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41년에서 189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9폭에 묘사된 천연정이 1741년(영조 17)에 지어진 것이고, 제8폭 위쪽의 영은문이 1895년 김홍집 내각에 의해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4. 경기관찰사, 경기도지사의 옛 이름

관찰사는 조선시대에 각 도에 파견된 지방장관으로, 각 군현의 수령을 감찰하고 도의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관리였다. 농사를 관리하고 흉년이나 기근이 있을 때 백성을 구제했으며, 조세·공납 등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할 임무가 있었다. 사법적인 업무로 형옥과 소송의 판결권이 있었고, 군사지휘권도 있어 군사의 모집과 훈련을 감독하는 한편, 방비를 위한 축성 사업을 관리하거나 전쟁에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기도 하였다.

경기감영이 한성부에 있었던 것은 다른 도와 달리 경기도가 왕실과 관련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기도관찰사는 궁궐에 들어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 많았고, 국왕은 경기도에 있는 왕릉들을 1년에 몇 차례씩 행차해야 했기 때문에 왕실의 능들을 관리하는 것 역시 경기도관찰사의 특징적인 업무 중 하나였다. 또 경기도관찰사의 명으로 1831년(순조 31)에는 상평통보가 경기감영에서도 만들어졌다. 이때 발행한 동전은 당일전·당이전·당오전 등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경기감영도〉(모사본)을 비롯하여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송언신(宋言愼,1542~1612) 초상(보물 제941호)과 이인엽(李宜顯,1669~1745)초상, 조선후기 경기도관찰사 등이 기록된 관리들의 명단인 관안(官案), 조선 왕릉의 관리를 위해 경기관찰사에게 내린 예조의 공문서인 예조관문(禮曹關文), 경기감영에서 주조한 상평통보 등이 전시된다. 전시기간 2013년 7월 2일부터 연중, 관람시간 오전10시부터 오후 6시, 관람료 4,000원(경기도민 50% 할인), 문의 031) 288-5400